유럽연합(EU)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글로벌 무역 분쟁에 맞서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하고 신속한 방어 체계 구축을 공식 요구했다.
로이터 및 폴리티코 유럽판은 5일(현지시간)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공동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서한을 통해 "무역을 무기 삼아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 탓에 EU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하며 기존 방어 체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소수 국가의 공급망에 얽매이지 않도록 수입 경로를 다변화할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정치·경제적 압력을 가해 공정 경쟁을 해치고 역내 시장을 교란하는 국가를 상대로는 EU 단일시장 진입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한에 구체적인 타깃이 적시되지는 않았으나, EU와 무역 격차를 급격히 벌리고 있는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EU가 중국과의 상품 거래에서 입은 무역 적자는 전년보다 15% 늘어난 3600억 유로(약 541조원)로 집계됐다. 매일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씩 손실을 본 셈이다.
EU 당국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과 과잉 생산된 저가 제품의 밀어내기 수출이 역내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무역 불균형 해소를 핵심 의제로 설정했으며, 이달 말을 시한으로 중국에 시정을 촉구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메르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발 빠른 대응을 위해 EU 집행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회원국들이 '가중 다수결' 투표로 명시적인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즉각 제재가 가동되도록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화학이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산업군 전체가 보조금 혜택을 입은 수입산 탓에 타격을 입고 있는지 EU 차원의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일 품목 위주로 이뤄지던 기존 조사의 범위를 산업 전반으로 넓히자는 제안이다.
독일 정부 당국자들은 로이터에 "미국의 무역법 301조를 활용한 관세 폭탄이나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에 맞먹는 강력한 무역 무기를 EU도 갖춰야 한다"고 이번 제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도 "특정 교역국과의 격차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EU의 발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15~16일 예정된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온 양국의 이번 구상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려면 EU 27개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최종 동의를 얻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