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과 관련해 프랑스 출신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가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고 체코 정부에 요구했다.

12일(현지시간) 유럽 매체 유락티브에 따르면, 체코 산업통상부의 루카시 블체크 장관은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부집행위원장으로부터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블체크 장관은 해당 서한이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며, 현재 답변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한수원은 체코 신규 원전 사업 입찰에서 EDF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EDF는 체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본안 판결 전까지 계약 체결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7일 예정됐던 한수원과 체코 발주처 간의 최종 계약 서명식은 전격 연기됐다.
EDF는 EU의 ‘역외보조금규정(FSR)’을 근거로 한수원이 부당한 보조금을 수령했다며 유럽 집행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관련 서한에서 “역외 재정지원 관련 정보를 조사 중이며, 최종 계약이 체결될 경우 EU의 조사권한과 시정조치 권한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FSR은 2023년 7월부터 시행된 EU의 새 규정으로, 역외 기업이 과도한 정부 보조금을 받고 역내 공공입찰에 참여할 경우 시장 왜곡으로 간주해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DF는 한국 정부가 한수원에 실질적 보조금을 제공해 공정 경쟁을 저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이번 EU 개입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블체크 장관은 세주르네 부위원장이 프랑스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외무장관도 세주르네가 EDF 제소 당일 밤에 관련 서한을 발송한 점에 대해 "프랑스인 위원이 금요일 밤 10시에 일하고 있었다는 점이 몹시 이상하다"며 "그는 매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베네시 체코전력공사(CEZ) 사장 역시 “프랑스가 원전 사업 수주를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EU의 개입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토마스 레니에 EU 대변인은 “EU 단일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일 뿐”이라며 세주르네의 이해충돌 논란을 일축했다.
EDF는 프랑스 정부가 전액 지분을 보유한 국영 기업이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직접 체코를 방문해 EDF의 수주를 지원한 바 있다.
한수원은 FSR을 어겼다는 EDF의 주장에 대해 “정부 보조금은 전혀 받지 않았고, 해당 입찰은 FSR 시행 이전인 2022년 3월 시작된 만큼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