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한은)이 원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될 경우 인가 단계부터 중앙은행이 직접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는 최근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통화당국으로서 규제 권한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지난 9일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대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인가 단계에 실질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앙은행 정책 수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입장에는 원화와 1대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법정통화인 원화의 수요를 대체하고 통화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USDT(테더)는 해외 송금이나 결제 분야에서 달러 대신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현행법상 국내에서 아직 발행이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한은은 최근 지급결제보고서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통화 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외부 충격에 따른 코인 투매가 전통 금융시장으로 리스크를 전이시켜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도입 및 규제 방안 마련 시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USDT 등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허용 여부부터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 토큰, 스테이블코인을 모두 아우르는 미래 지급결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한편, 스테이블코인 인가 권한을 두고 한은과 금융위원회 간 규제 주체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 1호 법안 초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권한을 금융위원회에 부여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고경철 팀장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