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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한국 팹리스 산업, 관점 바꿔야 할 때

제이든 기자

입력 2025.06.16 12:57수정 2025.06.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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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5년06월16일 12시57분에 파이낸스 스코프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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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의 나라’에서 ‘시스템 반도체의 나라’로, 파두가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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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논쟁’과 구조적 공백
한국은 D램·낸드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설계 분야 글로벌 점유율은 1%에 머문다.

제조 역량으로 치면 ‘세계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지만, 우리가 쓰는 모바일 AP·전력관리 반도체·SSD 컨트롤러 상당수는 미국·대만·중국산이다. 수출로만 보면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 수출의 20% 안팎을 책임지는 ‘국가 캐시카우’다.

다만 메모리 매출은 경기에 민감하고 기술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 ‘팹리스 산업의 공백’이 한국 반도체 2단계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구조적 리스크로 부상했다.
2. 파두의 10년, 새로운 시야를 열다― ‘신뢰’를 증명한 한국 최초의 팹리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분하고 있을 정도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 세계 점유율 1% 남짓. 세계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라는 위상과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시스템반도체는 미국, 대만, 중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다. 왜 시스템반도체에서는 한국 기업이 나오지 못했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구조를 고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파두’라는 회사를 통해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속도’보다 ‘신뢰’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메타·구글·아마존은 가동 중단이 수분만 생겨도 수십억 달러 손실을 본다. 이들이 부품을 채택할 때 최우선으로 보는 것은 지속 공급 가능성과 장애 대응 체계다. 스타트업이 이 문턱을 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 산업은 ‘속도’보다 ‘신뢰’의 게임이다. 제품 개발 3년, 고객 설득 4년, 검증 4년. 무려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글로벌 G사, 메타, 글로벌 S사에 공급을 시작했다.
또한 파두(FADU)는 SSD 컨트롤러 ‘FC5161’로 웨스턴디지털(WD)의 데이터센터용 ‘SN861’ SSD에 채택돼, 엔비디아 ‘GB200 NVL72’ AI 서버 랙 인증을 통과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미·중 ‘투톱’ 체제인 데이터센터 부품 생태계에서 실차검증을 거쳐 양산 공급까지 이른 첫 사례다.
3. 국내 팹리스 모델의 한계 vs 파두의 전략
한국의 대부분 팹리스 기업은 ‘국내 대기업에 납품’, 외산 대비 낮은 가격으로 공급을 목표로 해왔다. 스스로 제품을 기획하고, 해외 고객을 발굴하고, 세계 최고와 기술로 경쟁하는 모델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패 방정식은 명확했다. 내수 의존의 모델을 보자. ‘삼성·LG 세트’ 발주에 맞춘 커스텀칩의 경우, 진입은 쉬워도 확장성 한계를 명확히 가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가격경쟁은 힘을 잃을 수 있다. 예를들어 중국과의 단가 싸움에서 구조적 불리함이 크다. 

연구개발(R&D) 사이클 자본 부족도 국내 팹리스 모델의 한계다. 국내는 3~5년 무매출 기간을 버틸 모험 자본 업체가 희소하다.

다시 파두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파두는 처음부터 ‘북미 하이퍼스케일러’를 타깃 시장으로 상정했다. 고객 표준의 벽은 높았지만, 일단 통과하면 글로벌 공급 체인에 편입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크다. 이 전략은 TSMC·미디어텍·엔비디아가 써온 교과서적 성공 코스와 유사하다. 
4. ‘긴 호흡’ 산업에서의 투자 관점..선례의 가치
팹리스 산업은 ‘긴 호흡’이 전제되는 싸움이다. 파두는 매출이 본격화되기 직전, 사기상장 논란까지 겪었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단계(1∼2년)→테이프아웃·시제품(1년)→고객 검증·디자인윈(2∼3년)→양산(1년) 등 통상 5~7년이 기본이다. 

‘빅테크 고객-파운드리-서드파티 IP’ 삼각 구조를 매끄럽게 맞추려면 선행 R&D와 완제품 소비 시장의 시간차를 감내할 수 있는 장기 자본이 필수다. 한국 자본시장이 이 특성을 아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에, 파두는 유례없는 검증 과정을 국내에서 오히려 ‘성과 지연’으로 의심받았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선례’다.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133조 원 투자를 공언했다. 그러나 설계 생태계가 살아나지 않으면 파운드리 확대만으로는 칩 공급망 전주기를 완성할 수 없다. 삼성의 비젼도 국내에서 등장해야하는 글로벌 팹리스 기업이 있어야 완성된다.

파두 같은 초기 설계기업이 성공 사례로 굳어지면, 한국형 ARM·퀄컴·브로드컴 발굴을 위한 정책 자금·대학 연구 인큐베이션·M&A 시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살아나는 주요 방향성 중 하나가 국내 글로벌 반도체 설계 기업의 등장이다. 
5. 메모리 의존 탈피와 ‘2단계 성장’ 시나리오 '관점을 바꿀 시간'
2024년 기준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의 3.5배에 달한다는 가트너 추정치가 있다. 메모리만으로는 총수익 변동성을 피하기 어렵고, 중국 CXMT 등 후발주자의 추격도 거세다.

‘메모리 + 시스템’ 양대 축을 갖춰야 한국 반도체가 글로벌 사이클의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사슬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는 ‘파두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파두를 통해 한국 팹리스 산업을 다시 보는’ 시점에 와 있다. 이제는 한국 팹리스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파두는 그 전환점이다.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파두의 스토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매출 규모로 보자면 ‘유니콘’ 단계에 머무르지만, ‘한국이 하이퍼스케일러용 칩을 설계해 양산·공급까지 한 첫 선례’라는 점에서 이미 게임 체인저다. 

이 사례를 실적 지표로만 평가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다시 메모리 변동성에 발목 잡힐 것이다. 반대로 장기 자본·정책·생태계가 이번 경험치를 흡수한다면, 10년 뒤 한국은 삼성을 넘어 “한국판 브로드컴·엔비디아”를 거느리는 시스템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투자는 미래의 확률에 베팅하는 행위다. 파두가 증명한 건 ‘확률 0%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확률을 키우느냐, 사라지게 하느냐는 지금 우리의 관점과 선택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권에선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공개된 규모는 100조원이다. 이러한 정책·자금 지원이 모여, 제2의 파두 사례가 쏟아져야 한국 반도체 산업도 한 단계더 진화할 수 있다.

제이든 기자 kangchani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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